발목을 삐끗하거나 팔다리에 시퍼렇게 멍이 들면 주변에서 “어혈이 뭉쳤으니 한의원에 가서 피를 빼야 한다”는 조언을 듣곤 합니다. 심지어 “어혈을 그대로 두면 큰 병이 된다”는 이야기도 흔히 들립니다. 하지만 과연 이 말이 사실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막연하게 믿고 있는 ‘어혈 제거’가 정말 필요한지, 과학적 사실을 바탕으로 깊이 있게 살펴보겠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어혈은 과학적으로 증명된 실체가 아니며, 멍은 자연적으로 흡수되므로 어혈을 뺄 필요가 없습니다.
1. 한의학의 ‘어혈’ 개념, 그 실체는 무엇인가?
한의학에서 말하는 어혈은 “혈액이 정상적으로 순환하지 못하고 한곳에 정체된 상태”를 뜻합니다. 한의원에서는 외상으로 인한 타박상이나 염좌(삠)가 생겼을 때, 멍이 오래가거나 통증이 심한 것을 어혈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부항, 침, 한약 등으로 이를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현대의학적 관점에서 보면, 어혈은 해부학적이나 과학적으로 증명된 적이 없는 개념입니다. 수백 년간 인체를 해부해 온 해부학자들은 어혈이라는 독립된 혈액 덩어리나 조직을 발견한 적이 없습니다. 또한, 현대의 영상의학 기술인 MRI, CT, 초음파 등을 사용해서도 어혈이라는 실체가 확인된 바 없습니다. 전 세계의 어떤 의학 교과서나 논문에서도 '어혈'이라는 고유한 개념은 다루어지지 않습니다.
결론적으로, 어혈은 한의학의 전통적인 이론일 뿐, 현실에 존재하는 물질이나 상태로 입증된 바가 없습니다. 멍이 들었다고 해서 반드시 어혈을 제거해야 한다는 주장은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며, 전 세계 수십억 명의 사람들이 어혈이라는 개념조차 모른 채 멍이 들어도 자연 회복되는 사실이 이를 증명합니다.
2. 멍과 삠은 왜 생기고 어떻게 회복되는가?
멍(타박상)은 외부의 충격이나 염좌로 인해 작은 혈관이 손상되어 피가 피부 조직 사이로 스며든 상태입니다. 이 피는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 몸의 효소에 의해 자연적으로 분해되고 흡수됩니다. 처음에는 짙은 검붉은색이나 보라색을 띠지만, 헤모글로빈이 분해되면서 점차 녹색, 노란색으로 변하다가 보통 2주 내외에 완전히 사라집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손상된 부위를 보호하고 안정시키는 것입니다. 한번 다친 부위는 약해져 있기 때문에 과도하게 움직이거나 다시 충격을 받으면 출혈이 더 심해지고 손상 범위가 커질 수 있습니다. 특히 발목이나 손목 같은 곳을 삔 후 움직일 때 통증이 느껴지는 것은 늘어난 인대나 힘줄이 불안정하게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3. 부항으로 나온 검은 피, ‘죽은 피’가 아닌 이유
일부 사람들은 부항 시술 후 나오는 검은 피를 보며 “몸속의 죽은 피가 빠져나왔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는 명백한 오해입니다.
오해 1: 죽은 피라서 검은색이다?
부항으로 나오는 피가 검게 보이는 것은 죽은 피라서가 아닙니다. 이는 단순히 정맥혈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몸의 혈액은 폐에서 산소를 공급받아 온몸으로 전달하는 동맥혈과, 산소를 사용하고 다시 심장과 폐로 돌아가는 정맥혈로 나뉩니다. 동맥혈은 선홍색이지만, 산소가 적은 정맥혈은 원래 어두운 검붉은색을 띱니다. 피부 바로 아래를 흐르는 혈관은 주로 정맥이므로, 부항 시술 시 나오는 피가 검게 보이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현상입니다.
오해 2: 죽은 피 덩어리가 빠져나왔다?
부항 후 피가 덩어리져서 나온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바늘로 낸 작은 구멍을 통해 몸속에 있던 큰 혈전(피 덩어리)이 빠져나올 수는 없습니다. 부항으로 나온 피가 굳어 덩어리처럼 보이는 것은 혈관 밖으로 나온 정상적인 혈액이 공기 중에서 자연스럽게 응고된 것입니다. 피는 혈관 밖으로 나오면 누구나 2분 내외에 응고되기 시작합니다. 만약 정말 죽은 피였다면 응고 작용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죽은 피 덩어리가 정말 있다면 그 큰 덩어리가 부항을 뜨려고 바늘로 찌른 곳을 통해 빠져 나올 수 없고, 피로 나와서 굳었다면 이것이 정상 피라는 의미가 될 뿐입니다. 그러므로 삔 곳에서 부항을 떠서 나온 검은 피나 덩어리는 어혈 덩어리가 아닌 것입니다.
4. 삐거나 멍들었을 때의 가장 효과적인 대처법
“삐거나 멍든 경우 무조건 한의원에 가야 한다”는 생각은 잘못된 통념입니다. 과학적으로 검증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바로 적절한 휴식과 현대의학적인 치료입니다.
- 1단계: 초기 안정 및 냉찜질 (24~48시간) 멍이 들거나 삔 직후에는 출혈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손상 부위를 고정하고 움직임을 최소화해야 합니다. 이때 얼음찜질을 해주면 혈관이 수축해 추가적인 출혈을 최소화하고 붓기를 가라앉히는 데 도움이 됩니다.
- 2단계: 온찜질 및 물리치료 (48시간 이후) 초기 출혈이 멈춘 후에는 온찜질로 혈류를 개선하여 피가 더 빨리 흡수되도록 돕습니다. 병원에서의 물리치료는 주변 근육의 긴장을 완화하고 회복을 돕는 데 효과적입니다.
- 3단계: 관절 고정 및 통증 관리 발목을 삐었을 때 걸을 때마다 아프다면, 늘어진 인대나 힘줄이 불안정하게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이때는 깁스나 보조기를 착용해 관절을 단단히 고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관절을 고정하면 통증이 줄어들고, 추가적인 손상을 막을 수 있습니다. 또한 늘어진 인대가 비정상적인 각도로 굳는 것을 방지하고 정상적인 회복 각도로 유도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통증이 심할 경우, 병원에서 처방받은 진통소염제를 복용하는 것이 통증을 가장 효과적으로 줄일 수 있는 방법입니다.
- 어혈을 제거하려 하거나, 부항 시술을 하는 것은 거의 의미가 없습니다. 다만 침을 맞는 것은 어느 정도 진통 효과가 있으니 맞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진통소염제가 부종의 감소와 통증 감소 등에서 효과가 일정하고, 뛰어나므로 통증을 줄이는데 있어서 침의 효과와 진통소염제의 효과를 비교해 보고,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선택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즉, 한의원을 가든지, 정형외과를 가던지 때가 되면 인체가 알아서 저절로 낫습니다. 어느 곳으로 가던지 다친 부위를 계속 움직이면 잘 안 낫고, 어느 곳으로 가던지 다친 부위를 잘 보호하면 잘 낫는 것입니다. 단, 한의원을 가면 침으로 약간의 진통효과를 바라볼 수 있지만, 정형외과를 가면 x-ray를 찍어서 골절이 있나 확인할 수 있고, 깁스를 해서 관절을 잘 고정하고 보호할 수 있으며, 진통소염제를 제대로 처방받아서 통증을 더 확실하게 조절할 수 있는 것입니다.
5. 올바른 선택이 중요합니다
멍은 우리 몸이 스스로 치유하는 것입니다. 별도의 시술 없이도 자연적으로 흡수됩니다. 어혈을 제거하려고 애쓰는 우리나라 사람들이나 전세계의 다른 사람들이나 삔 곳의 멍과 부기가 빠지는 속도에는 차이가 없습니다. 세계의 모든 사람들 중에 어혈을 제거하지 않아서 건강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없습니다. 어혈이란 전 세계 어디에서도 의학적으로 인정되지 않는 개념입니다. 멍이나 삠이 발생한다면
- 병원 방문: 골절이 있나 확인을 위해서라도 정형외과를 방문해 정확한 진단을 받습니다.
- 안정과 고정: 다친 부위를 움직이지 않게 고정하는 것이 추가 손상을 막는 가장 중요한 방법입니다.
- 냉/온찜질: 초기에는 냉찜질로 출혈을 최소화하고, 이후에는 온찜질로 혈액 순환을 돕습니다.
- 통증 조절: 통증이 심하면 병원에서 처방받은 진통소염제를 복용합니다. 통증 조절 목적으로는 한의원에서 침을 맞을 수도 있습니다.
불필요한 민간요법에 의존하기보다, 과학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올바른 관리법을 선택하는 것이 여러분의 회복을 앞당기는 가장 현명한 길입니다.